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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정보

고려거란전쟁 200% 재밌게 보기 위한 인물정보, 배경정보

by J.Dit 2023. 12. 5.

목차

    고려거란전쟁 관한 KBS의 대하드라마가 새롭게 방영했습니다. 무엇이든 아는 만큼 보이고 재미있기 때문에 고려거란전쟁 드라마에 나오는 이야기에 대한 배경 지식이 있다면 200% 재미있게 즐길 수 있을 것이기 때문에 고려거란전쟁 배경과 인물 정보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목종, 현종의 가계도

    가장 먼저 드라마를 재미있게 보려면 등장인물들의 관계를 알아보아야 합니다. 특히 1화에 나오는 '목종'과 '천추태후'에 대한 인물 정보를 알게 되신다면 드라마가 훨씬 재미있을 것입니다.

     

    고려 제7대 왕 '목종'은 고려 제5대 왕 '경종'의 아들입니다. 그런데 왜 5대 왕의 아들인데 6대 왕이 아니라 7대 왕이 되었을까요? 그것은 5대 왕 '경종'이 죽을 때 '목종'은 1살이었기 때문에 '경종'은 자신의 아들이 아닌 '왕치(=6대 왕 '성종')'에게 왕위를 물려주었습니다.

    왕치(=성종)는 경종의 사촌이자 처남이자 매제인 사람입니다.

    고려거란전쟁의 배경지식인 고려 왕실 가계도입니다.
    고려 왕실의 가계도는 실제로 훨씬 복잡하나 드라마에 나오는 인물 위주로 기입했습니다.

    태조 왕건은 본인의 순수 혈통을 유지하기 위해 자기 핏줄끼리 결혼을 많이 시켜 근친혼이 많았습니다. 사촌끼리 결혼하기도 하고 삼촌과도 결혼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같은 왕씨끼리 결혼을 하게 되면 모든 사람들이 왕씨가 되는 것이 문제였기 때문에 태조왕건은 아들만 아버지의 성을 따르게 하고 딸인 경우에는 어머니의 성을 따르게 했습니다.

    ※ 태조왕건은 지방호족과의 세력을 합치기 위하여 부인만 29명에 이릅니다. 이때 태조왕건의 아들은 왕씨를 물려주고, 딸인 경우에는 어머니의 성을 따르게 하여 여자들은 모두 성이 달랐습니다.

     

    태조 왕건의 손자인 '경종'은 왕비가 4명인데, 모두 태조 왕건의 손녀입니다. 즉, 경종의 왕비는 모두 그와 사촌지간이었습니다. 게다가 그중 두 명은 자매였습니다. 자매는 '헌애왕후'와 '헌정왕후'인데 '헌애왕후'가 천추태후입니다.

    5대 왕 경종과 천추태후의 아들이 7대 왕 목종입니다. 그리고 헌정왕후의 아들이 8대 왕 현종입니다.

    그런데 현종은 경종의 아들이 아닙니다. 5대 왕 경종이 죽고 난 뒤 헌정왕후가 재혼을 하여 얻은 아들이 현종입니다.

     

    목종 즉위

    6대 왕 성종은 2대 3대 왕들과는 다르게 인자한 왕이었습니다.  성종의 나이 29살 때 목종은 10살이었습니다.

    목종이 10살이 되자 성종은 목종을 후계자로 선포합니다. 이후에 성종에게 아들이 있었다면 문제가 되었을 테지만 다행히도? 성종에게는 아들이 없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후계자로 지명받은, 그리고 5대 왕 경종의 아들이기도 한 목종이 고려의 7대 왕이 되었습니다.

     

    천추태후

    천추태후의 원래 이름은 헌애왕태후이며, 주로 살았던 곳이 천추전이란 곳이라서 비공식적으로 천추태후라고 불립니다.

    목종이 왕이 된 것은 17살 때였습니다. 고려시대는 15살이 넘으면 성인으로 취급하였기 때문에 목종은 성인이 된 이후 왕이 된 것입니다. 그런데도 천추태후는 권력욕이 있었는지 섭정을 시작합니다. 따라서 목종은 그의 어머니 천추태후에 가려져 빛을 보지 못한 왕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천추태후의 업적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은 고려의 불교 부흥을 일으킨 것 정도입니다.

     

    목종의 업적

    실제로 어머니 천추태후에게 가려져 빛을 보지 못한 왕인 목종의 업적으로는 두 가지를 꼽을 수 있습니다.

    첫 번째 북방 군사력 강화, 두 번째 중립 외교정책입니다.

    당시 북쪽에 있던 거란은 송나라를 쳐들어가서 박살을 냅니다. 전쟁에서 진 송나라는 매년 거란에게 은 10만 냥, 비단 20 만필을 조공으로 바치기로 하는 '전연의 맹약'을 맺습니다.

     

    이 싸움을 통해 목종은 거란의 힘이 생각보다 강하다는 것을 알게 되고 송나라와 거란 가운데서 중립적인 외교를 펼칩니다.

    또한, 무조건적으로 거란이 고려를 쳐들어오지 않을 것으로 생각지 않고 북쪽에 성을 쌓고, 성을 보수하는 작업을 많이 합니다. 나중에 이 작업이 2차, 3차 고려거란전쟁에서 아주 큰 도움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