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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대한민국의 남자다.
대한민국의 남자는 모두 20살이 되면 '군대는 어떻게 하지'라는 고민을 한다.
사람마다 추구하는 가치가 다르니 정답은 없지만, 나는 21개월 동안 군대에 끌려가서 땡전 한 푼 못 벌어온다는 게 너무 싫었다. 어차피 군대 가야 하는 거 차라리 장교로 들어가면 36개월 복무를 해야 하지만 매월 150만 원 정도는 받을 수 있다고 해서 학사 장교를 가는 게 경제적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다닌 대학교는 ROTC가 없었다.)
비록 15개월은 더 묶여 있지만 사회에 나왔을 때 경력도 제대로 인정받을 수 있고, 많은 돈은 아니지만 그래도 제대 후 1~2천만 원은 모을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나는 학사 장교를 지원할 만큼 성적이 좋지 못했다.
대학교 친구 중 몇몇은 1학년 마치고 입대했고, 대부분은 2학년 마치고 입대했다. 나는 그때까지도 학사장교의 꿈을 버리지 못했다. 그런데 자신은 없었다. 일단 휴학을 했다. 부모님께는 학사장교라는 제도를 통해 군 문제를 해결할 것이고 그전에 딱 1년만 사회 경험을 하고 싶다고 했다. 사회경험이라는 게 별다른 게 아니고 여자친구를 사귀고 싶었다. 그래도 집에서 놀지 않고 아르바이트를 구했고, 저녁 6시까지 일하며 돈을 벌었다. 아르바이트를 하면 여자친구를 사귈 수 있다고 했는데, 나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이야기였다. 여자들이 많이 있다고 하는 토익학원과 일본어 학원을 다녔다. 부모님께 나는 사회 경험을 쌓으며 본인이 번 돈으로 스펙도 쌓는 훌륭한 아들의 모습이었지만 실상은 어떻게 하면 여자친구를 사귈 수 있는지 고민하는 발정난 22살이었다.
별다른 소득 없이 1년이 지나갔다.
3학년으로 복학했다. 전공은 적성에 맞지 않았고, 잘하지 못하는 공부는 더욱 하기 싫었다.
학교 성적은 늘 다른 사람의 병풍이 되어 주었고, 마음속 한편에 갖고 있던 혹시나 하는 학사장교의 꿈은 불가능한 것으로 확실시되었다. 3학년 1학기가 끝나고 전공에 대한 고민이 생겼으며 학교도 군대도 생각하지 않고 도망가고 싶었다. 하지만 학생 신분이 아니라면 나는 군대를 가야만 했다. 그러다 번뜩 해외를 가면 군대를 연기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워킹홀리데이라는 제도를 알게 되었다. 찾아보니 사람들은 영어 습득을 위해 호주로 많이 간다고 했다. 하지만 나는 영어를 너무 싫어했고, 그나마 일본어 학원을 다닐 때 일본어는 살짝 재미가 있었다.
나는 일본 워킹홀리데이를 알아봤다.
3학년 2학기는 학교는 나갔지만 공부보다는 일본 워킹홀리데이를 더 많이 신경 썼다.
내가 워킹홀리데이를 신청했을 땐 일본은 경쟁률이 높지 않아 웬만해서는 갈 수 있었다. 나는 3학년을 마치고 3월에 가기로 했다. 때는 2011년도 3월이었다.
워킹홀리데이 장소를 일본으로 결정한 이유
여러 가지가 있지만 가장 큰 이유는 언어였다. 영어는 정말 자신 없었다. 그나마 일본어는 한국어와 어순이 같으니, 단어만 많이 외우면 어떻게든 문장으로 의사소통이 되었다.
두 번째는 당시에는 장근석이 일본에서 인기가 많았다. 한류로 인해서 한국남자의 이미지도 좋았다. 영어권에 가서 아시아인 차별받으며 딸기 농장에서 딸기 수확할바에 같은 아시아인 일본으로 가서 한류 덕도 보고 모든 남자들의 로망인 일본 여자와 연애도 하고 싶었다.
세 번째는 당시 엔화 환율이 정말 비쌌다. 1,300~1,400원 사이였던 것 같다. 애초에 집에서 돈을 받을 생각이 없던 나는 워킹홀리데이라는 취지에 맞게 가자마자 일을 할 생각이었다. 일본은 최저 시급이 1,000엔 정도라고 들었다. 환율로 계산을 하면 한국돈으로 시급 13,000원 정도였으니 아르바이트를 하며 시급으로 5,000원을 받으며 많이 받았다고 생각했을 때니 같은 일을 해도 3배는 버는구나 생각했다. 아르바이트만으로 많은 돈을 벌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동일본대지진 발생
2010년도에 일본 워킹홀리데이 비자는 받아 놓은 상태였다.
나는 3학년 2학기를 마치고 겨울방학 때 집중적으로 언어 준비를 한 뒤 2011년 3월에 출국하려고 계획했다. 그러다 3월 11일 대지진이 발생했고, 뉴스에는 연일 원전폭발로 인한 방사능 유출에 대한 뉴스가 터져 나왔다. 당연히 부모님과 지인들은 나의 일본행을 말렸다. 나 역시 예정대로 들어갈 수는 없을 것 같아 일단 출국일을 한 달 뒤로 연기했다. (정확하게 어떻게 연기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상황이 상황인 만큼 별다른 어려움 없이 연기가 가능했었다.) 솔직히 지금 출국하지 않으면 군대 가야 한다는 사실이 너무 싫었다.
매일매일 뉴스를 봤다. 일본정부에서는 괜찮다고 했다. 도쿄에 사는 사람들도 아무 문제없다는 발표를 했다. 나는 순진하게 정부가 자국민을 지키는 것은 당연한 것이니, 정부에서 괜찮다고 하면 괜찮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돌이켜보면 그런 순진한 생각은 참 어리석은 생각이었다. 정부는 자국민을 보호하지 않는다 그저 경제적 이익이 있는 쪽으로 행동할 뿐이다.)
여러 사람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나는 4월에 출국했다.
숙소 그리고 현지 적응
워킹홀리데이 준비 할 때 당연한 것이지만 숙소는 정말 중요하다.
나는 찾다 보니 레오팔레스라는 부동산 업체가 마음에는 들었다. 혼자 살 수 있고, 사기도 당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렇지만 가격이 비쌌다. 그렇다고 워킹홀리데이 네이버 카페에서 룸메이트를 구하고 싶지는 않았다. 기왕 외국을 나가는데 외국인 친구를 만나야 한다는 게 내 생각이었다. 여러 방향으로 찾다 보니 업체명은 기억나지 않지만 '게스트하우스'형식으로 운영하는 부동산이 있었다. 커다란 대형 건물에 여러 방을 빌려주고 거실과 주방은 공용으로 사용하는 시스템이었다. 월세도 생각보다 저렴했고, 계약도 월단위로 자유롭게 할 수 있었다. 한국의 고시원 같은 시스템이었다. 나는 한국인이 그나마 적은 쪽으로 가고 싶었고 그렇게 결정한 지역이 가나가와현이었다. 도쿄와 전철로 연결되어 있으며 조용한 동네였으며 가격이 그리 비싸지 않았다. 돌이켜보면 게스트하우스 형식의 숙소를 선택한 것은 매우 잘한 선택이었다. 현지에 적응할 수 있도록 숙소에 있는 사람들에게 많은 도움을 받기도 했고, 많은 에피소들이 있었다. 계약한 게스트하우스는 정원이 12명(정확하지는 않다)인 작은 2층 집이었다. 정원이 12명인데 실제로 거주하는 사람은 9명이었던 것 같다. 그중 외국인은 나 혼자였다.
숙소는 전체적으로 매우 좁았다. 용변만 볼 수 있는 작은 화장실과 샤워부스가 설치된 별도의 공간이 있었고, 주방도 작고, 거실도 33평 아파트 거실정도의 크기였으며, 가장 중요한 방은 1인용 침대와 작은 책상, 냉장고, 벽에 달린 옷걸이가 전부였다. 정말 고시원 그 자체였다.
나는 한국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남은 100여만 원과 부모님이 지원해 주신 300만 원, 총 400여만 원을 가지고 일본으로 갔다. 약 2달치 월세와 생활비 정도였다. 가자마자 저렴한 휴대폰을 개통했고, 숙소 주변에 어떤 가게나 편의시설이 있는지 매일 밖으로 돌아다녔다. 어차피 함께 거주하는 일본인들도 모두 출근을 해서 숙소에는 아무도 없었기 때문에 어디라도 밖으로 돌아다니는 게 정답이었다.
나는 스스로 딱 한 달만 적응시간을 갖도록 하고 그 뒤에는 바로 아르바이트를 구해야겠다는 생각이었다. 왠지 아르바이트를 금방 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첫 한 달 동안의 하루 일정은 주로 구청, 주민센터에서 열리는 "외국인을 위한 일본어 교습"을 다녔다. 처음 일본에 도착하자마자 뚜벅이로 동네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일본어를 최대한 배우려고 아는 길도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물어보며 돌아다녔다. 그러다 주민센터에서 일본어 수업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어 방문했는데 은퇴한 일본인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자원봉사를 하는 수업이었다. 수업은 매일매일 있는 것이 아니라 주 1회 평일에만 있었다. 그런데 이런 수업을 하는 곳이 여러 곳이 있어서 나는 매일 1시간 혹은 3시간씩 이런 자원봉사자를 통해 이뤄지는 일본어 수업을 많이 받았다. 대부분은 100엔을 내는 시스템이었고, 할아버지, 할머니들과의 즐거운 토킹, 일본 문화 소개하는 수업이었고, 맛있는 간식을 항상 먹었다. 이때 정말 일본어 실력과 자신감이 높아졌다.
한 달이라는 시간이 지나며 나는 어렵지 않게 현지 적응을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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